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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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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녀가 횡행하는 사회

[서민의 과학과 사회]‘막말녀’가 횡행하는 사회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지하철에서 젊은 여자가 남자와 싸우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삽시간에 검색어 1위가 된 그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여자를 욕하며 신상을 털었다. 실수로 발을 밟은 건 남자였고, 먼저 심한 욕을 한 것도 남자 쪽이었다. 여자의 막말은, 그러니까 남자의 막말에 이어진 나름의 대응이었다. 몸싸움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음 역에서 내리라며 손을 잡으려 하자 여자가 손을 뿌리쳤고, 남자가 여자 어깨를 밀치자 여자가 남자 뺨을 때린 거였다.

그럼에도 이 동영상의 제목은 ‘지하철 막말녀’였는데, 이게 과연 ‘욕설에 주먹다짐까지… 경악’이라며 여자만 욕할 상황인지 모르겠다. 여자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개가 더 잘 짖는 것처럼, 남자에 비해 신체적 조건이 월등히 불리한 처지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화제가 되는 동영상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언젠가 인터넷을 달궜던 10대 여자와 할머니 간의 다툼을 담은 동영상에는 여자애가 할머니한테 일방적으로 맞는 장면이 담겨 있었지만, 제목은 ‘지하철 패륜녀’였다.

지난해 말 화제가 된 ‘지하철 막말녀’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여자는 알고 보니 임산부였다. 안산터미널에서의 승강이를 담은 ‘터미널 진상녀’ 역시 그 여자의 대응이 지나쳤을망정 막차 시간까지 가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택시기사의 잘못도 있었다. 신기한 건 이렇게 화제가 되는 동영상의 주인공이 거의 대부분 여자라는 것. 동영상의 원조 격인 ‘개똥녀’를 필두로 최근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채선당 임신부와 소위 ‘국물녀’도 다 여자들의 ‘꼴불견’을 다룬 거였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남자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훨씬 더 많음에도 여자의 악다구니만 유독 화제가 되는 건, 여자란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그녀들이 거슬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동영상의 유포는 인터넷을 통한 인민재판으로 그녀들을 벌하려는 목적이리라.

벌하는 것 이외에 여성을 찍은 동영상을 부지런히 퍼나르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남자들이 여자를 욕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영상의 주인공들이 ‘젊은 여자’에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학자 엄기호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고 배우고 들은 것들이 내 몸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대신 짜릿한 자극을 한 번 주고는 휙 지나간다. … 그래서 또다시 다음 자극을 기다리거나 찾아 헤맨다. 삶은 헛헛해질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좀 더 자극적인 장면을 찾아 휴대폰을 들이대고 있다. 화질이 선명하게 찍히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런 유의 동영상은 앞으로 점점 늘어날 전망인지라 안 그래도 피곤한 여자들의 삶은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괜히 말대꾸 한번 했다가 자신이 주인공인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네 삶이 워낙 비루하다 보니 젊은 여자를 욕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한 방법일 테지만, 문제는 정말로 분노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거다. 4대강 사업은 점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MBC는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한 달째 파업 중이며, KBS와 YTN도 같은 이유로 파업을 선언한 상태다.

돈이 없다며 반값 등록금에 반대하고 아이들 밥도 주지 못하겠다던 현 정부가 지난 4년여 동안 깎아준 세금이 무려 82조원이란다. 이런 것들에 분노하는 대신 사회적 약자인 여자들의 일탈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싸우는 여자를 향해 휴대폰을 들이댄 당신, 그리고 그 동영상을 보면서 “이거 대박이다!”며 좋아하는 당신들, 이건 알아 두시라. 당신이 이러는 한, 당신들의 삶은 앞으로도 쭉 헛헛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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